25.5.12

적어두기

너의 질문은 지금은 상식적이고 논리적이지만 그때에는 나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 다 믿을 수 없었어. 이상하게 보이니? 그때에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뭐라고 한정 짓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그 무엇, 너를 뛰어넘고 그 당시 모든 것을 결정해 버린 것 말이다.
광야의 수 킬로미터 너머,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마을까지 갈 수 있는 체력의 한계 너머에, 우리와 그 마을들 사이에 가장 이론적인 것 외에 이해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었단다. 두개의 세상이 존재한다든가 아니면 시간 여행이 가능하다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네가 엉뚱한 방향으로 이해하는 것을 원치 않아. 나는 공포를 말하는 게 아니다. 육체적인 공포가 아니란다. 물론 여기 들판의 한가운데에 육체적인 공포는 존재하지.
나는 모든것을 의식하고 있었어. 이상하리만큼 선명한 이 의식으로 인해 생명을 지킬 수 있었어. 거기에 작은 행운이 더해져 우리가 승리할 수 있게 된 거지. 추위나 배고픔으로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의식하고 있었어. 그래서 우리가 존재하는 것이 멈출 수도 있었단다.
죽음의 공포가 우리를 이 고립된 장소에서 벗어나고자 시도하지 못하게 한 것이 아님을 너는 이해해야 해. 반대로 말해보자. 죽음은 우리를 두렵게 할 그 어떤 것도 아니었어. 죽음은 단지 거기에 있었을 뿐이야. 저 들판에, 우리 옆에. 우리가 죽음을 물리칠 것인지 아닌지는 단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였어. 여기 모든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좌우되는 거란다. 물론 외부에서 중재하는 거대한 매개체를 통해 거기에 가게 된 거지. 그렇지만 이러한 외부적인 결정의 범주에서 우리가 죽을지 안 죽을지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달린 거란다. 이 중재자의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죽음과 삶이 가능한 척도의 말할 수 없이 좁은 이 내면에서 모든 것이 가능했단다. 반대로 외부에서는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았지. 아무것도 더 이상 우리가 어떻게 하느냐에 좌우되는 것은 없었어. 우리가 살고 있던 곳에서 우리를 떼어놓은 것은 삶과 죽음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그것들과의 접촉이 아무 데도 쓸모가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었어.
우리를 멈추게 한 것은 불가능, 이해할 수 있는 무용지물이었단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니? 우연히 모인 결혼식 피로연에서 트럭에 타고, 기차 화물칸으로 옮겨 타고, 그 들판의 원시적인 공동체에서 같이 살도록 중재자에 의해 분리되어 그곳에 있게 된 그 순간부터 우리는 중재자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으려 했다는 것을, 중재자가 있다고 의식한다는 것이 우리에게 무익하다는 것을 이해해야 했단다.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한 가지 중요한 원인은 우리가 있는 곳의 상황을 이해하고 우리 앞에 놓여진, 한정될지라도, 내면의 논리적인 기준이 되는 체계를 발견했다는 점이야.



55-57p 과거 설계, 아나 블란디아나/백승남 역 , 지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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