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음을 머금고서 가르치는 일이 즐겁다고 하셨다.
몇 푼 안되는 돈을 받고 보람 없는 평론을 내놓는 것 보다
쓰고싶은 글을 천천히 쓰되, 아카데미에서 젊은 지성들과 이야기하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시간이 계속 있었으면 좋겠다고.
29.9.17
27.6.17
잠에서 깨는 딱 순간에 뭔가 더러운 것이 머리속으로 파고들었다. 나는 어떤 명상으로 그것을 멈출 수 있을까?
뭔가 갖고싶은 것이 있는데 가져지지 않을때는 거기에 정신이 팔려 모든 것들을 잊는다.
성숙하지 못한 감정의 일례로, 진짜 좋아해서라기 보단 비틀어진 이유들로 D를 가지고 싶었던 작년의 짧은 몇 달간 나는 돈도 예술도 명성도, 웃기게도 D를 가지려면 필요한 어떤 부차적인 것들로 여겼다. 근데 그게 아니었다. 걔에게서 얻고픈 걸 얻지 못하고 온 몸과 마음이 다 걷어차였을 때도 뭔가를 생각하고 만드는 행위 밖에는 나를 달랠 것이 없었고, 그러고서도 가질 수 있는 건 아주 아주 개인적이고 너무나도 관념적인, 레슨의 결과인 문장들밖에 없었다. 결국 손으로 그러쥐어 가질 수 있는게 아무것도 없다. 아름다운 물건. 전시를 해서 이름과 놀라운 능력을 뽐내어 어떤 영향을 주는 것. 누굴 사랑해서 자기 이름 옆에 누군가의 이름을 묶어놓는 것. 인스타그램에 팔다리를 엿가락처럼 늘인 사진이나 누구랑 친해보이는 사진이나 내가 먹은 곳 간 곳의 사진을 만천하에 걸어두는 것. 다 비슷한 의미에서 애초에 가질 무언가조차 존재하지 않는 일들이다. 실제로 우리가 소유할 수 있는건 더 더 공기같은 것들 뿐이다. 그러므로 나는 매일 불쾌하게 다가오는 아침에는 공기만을 가질 것이라고 되뇌일 것이다. 공기만을 누릴 것이다. 동물과 같이 산책할 때 들이쉬는 밤의 고요하고 물기어린 공기. 어중띠게 노란 저녁에 무너지듯 이른 귀가를 하면서 보는, 지저분한 건물과 종일의 사람들이 새겨져있는 공기. 연인과 같이 심심한 식사를 할 때의 밥김같은 공기. 잔혹한 형상으로 부풀어오른 볼을 가진 노인이 입김처럼 인생의 섬찟함을 후후불며 지나갈 때 몸이 맞는 공기.
내가 너의 오래된 친구라고 누가 말해주던?
그렇게 단언하지마. 공기가 아니래.
28.1.17
2017년은 늘 해왔던 것과는 다른 방식으로 다짐하자.
'이해할 수 없는 일들' 이라는 표현이 스스로를 기만하는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이해했다.' '나는 이해를 못 했다.' 이렇게 말하는게 너무 단정적이라는 이유로
반복적으로 나를 기만했던 것이다. '나'라는 주어를 제하고, 애매한 표현들에 기대서.
새로운 다짐은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라는 표현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올 해에 접근하는, 엑세스 코드를 만드는 것으로 대체해본다.
1. 100% my decision
선택과 결단의 과정을 더 더 나에게로 옮겨오고 싶다.
내가 결정하고 책임졌을 때 오는 충실한 고통의 횟수를 올 해는 더 늘려나갈 수 있길 바란다.
도움은 정말 간절할 때 요긴하다고 느낄 수 있다.
2. Handland
작업과 구체적인 관계를 맺기 위해 물리적으로 더 몰두할 것이다. 작업양과도 깊은 관련이 있다.
그걸 두고 머리로 씨불씨불대는 것은 시작과 마무리에만 허용해본다.
3. HMGH
11월부터 내 머릿속을 휘어잡고있는 주제를 구현하기 위해, 내가 여태 쌓아올린 켜켜이 묵은 생각들을 발로 꽝꽝 무너뜨려 풀어헤칠 수 있길 바란다. 이를테면 내가 혐오하는 사람과 대화를 할 수 있고, 사랑할 수 있고, 내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해내는 것이다. 관건은 내상을 입지 않을 것.
피드 구독하기:
글 (Atom)

